Skip to content
StanStory.com
Go back

나의 대학 생활 이야기

나는 대학 때 외국에서 온 친구들을 보면서 그들이 경험했던 다양한 문화와 경험이 아주 부러웠다. 한국에서 자라나 다른 세계를 경험 할 기회가 없었던 나에게는 다른 나라에 여행이라도 가는 것은 하나의 동경의 대상이었다. 카이스트에 들어가고 전자과 공부를 시작하게 되면서 학과의 교수님들이 어떤 분인지 궁금해서 이력을 찾아보면 거의 대부분이 미국 유수의 대학에서 박사 학위를 따고 들어오신 분들이었다. 미국은 내가 공부하는 학문의 진원지였고 가장 발전된 곳이었다. 그리고 그곳에서 공부하게 된다면 직장이든 학교든 내가 원하는 것을 미래에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렇게 막연한 동경에서 시작된 미국 유학에 대한 관심이었지만 대학 시절부터 미국에서 공부하기 위해서 많은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늦게 시작된 방황

나는 과학 고등학교를 다녔기 때문에 2년 만에 조기 졸업하고 카이스트에 입학 할 수 있었다. 고등학교 때는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그렇게 공부를 열심히 했는데 막상 대학에 오고 나니 목표가 사라져 버려 방황을 많이 했었다. 집을 완전 떠나와서 대전의 기숙사에 살게 되었고 이제는 대부분의 결정을 나 혼자 해야 되는 상황에서 왜 공부를 열심히 해야 되는지도 모르겠고 이제는 좀 놀고 싶다는 생각에 공부에서 조금씩 손을 떼기 시작했다.

카이스트에서 1학년 때 처음 배우던 대학 수학과 물리는 고등학교 때 대부분 봐놓아 더 흥미를 가지기도 힘들었다. 고등학교 때 물리 경시 대회를 준비하느라 대학 과정의 미적분과 대학 물리는 수십 번을 봐서 수업을 듣지 않고도 따라가는 것이 그렇게 어렵지는 않았다. 그리고 갑자기 많아진 시간과 새로 사귄 친구들과 대학 생활을 즐기느라 공부는 당연히 뒷전이 되어 버렸다.

그리고 이 때부터 공부가 귀찮아지기 시작했다. 학기는 시작했고 수업은 들어가는데 교수님의 강의는 귀에 들어오지도 않고 꾸역꾸역 수업만 참석했다. 시험은 다가오는데 친구들과 노느라 책은 보지도 않고 수업에 들어가는 일도 허다했다. 한 수업은 정말 제대로 교과서를 읽어보지도 않고 시험에 들어가서 망친 일도 있었다.

그렇게 1학년의 한 학기가 지나가고 학점을 보니 4.3 만점에 2.6 정도가 나와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때 카이스트에서는 성적표를 부모님 집에 보내주었는데 여름 방학에 집에 가서 이 성적표를 받아 부모님께서 보시기 전에 숨겼던 생각도 난다. 원하던 대학은 들어갔지만 그 성적을 부모님께 보이기에는 좀 부끄러웠나 보다.

대학을 들어간 후 첫 여름방학은 정말 따분했던 것 같다. 과학고를 2년만에 조기 졸업하고 간 것이었기 때문에 내 나이 또래의 대부분의 학생들은 고3이 되어 대학 입시 공부로 바쁜 시점이었기 때문에 카이스트 친구들을 만나는 것 빼고는 별로 할 것이 없었다. 지금도 후회 되는 것이 그때 여행도 많이 다니고 책도 많이 읽고 했어야 하는데 집에서 비디오나 빌려서 보고 TV나 보면서 여름 방학을 다 보냈던 기억이 있다. 그래도 부모님께 감사 드리는 것이 그렇게 시간 낭비를 하면서 방학을 보냈어도 나에게 아무 잔소리도 하지 않고 기다려 주셨다는 것이다.

대학교 3학년 때 합류한 벤처 기업

대학교 1학년 때 놀아서 기초를 쌓지 못하니 전공에 진입하게 되는 카이스트 2학년 때는 공부가 더욱 힘들어졌다. 나는 국민학생 때부터 전자과를 가겠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외삼촌 두 분이 전자과 교수님으로 계셨고 어릴 때부터 컴퓨터에 관심을 많이 가져 전자과가 내가 가야 하는 길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대학교 2학년 때 시작한 전자과에서의 삶은 나의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는 것이었다. 회로 이론부터 시작해서 전자기학, 전기 회로 등의 원론적인 과목들은 로봇이나 전자기기에 열광해 있었던 내가 왜 이 길을 선택했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가고자 하던 전자과의 전공 과목들을 들었지만 흥미를 느끼지 못하고 학점도 바닥을 기었다. 이건 내 길이 아닌가 싶었다.

한번은 카이스트에 다니는 것이 내 길이 아닌 것 같아서 집에 무작정 내려갔었다. 카이스트를 그만두고 의대를 가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해서 어머니께 말씀 드렸더니 어머니께서는 찬성하셨다. 하지만 아버지가 반대하셔서 조금 더 깊이 생각해보기로 했다. 다시 학교로 와서 곰곰이 생각해보니 내 적성이 안 맞아서라기보다는 내가 공부를 따라가기가 너무 힘들고 계속 낮은 학점을 받다 보니 자신감도 많이 잃었던 것 같았다. 다시 마음을 다잡고 학과 공부에 집중해 보기로 했다.

하지만 2년 동안 안 하던 공부를 다시 따라잡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열심히 한다고 했는데도 생각만큼 성적이 오르지 않는 것이었다.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앞섰고 공부에 대한 흥미도 조금씩 더 잃어가고 있었다.

때마침 여름 방학 때 생활비를 벌기 위해서 여러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학교내의 벤처 기업에서 음성 녹음 아르바이트를 한다고 사람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파트 타임으로 일을 하면서 그곳 벤처기업의 대표님을 만났다. 회사는 SL2라고 음성인식 및 합성 소프트웨어를 만들어내는 신생 기업이었다. 카이스트의 전산과의 음성인식 연구소와 전산과 석사 멤버들이 주축이 되어 창업을 했고 나는 초기 회사 멤버 중의 하나로 합류하게 되었다.

공부에 대한 흥미를 조금씩 잃고 있었고 새로운 경험도 해 보고 싶어 회사에 발을 담그게 되었는데 이곳에서의 경험은 내 인생에 다음과 큰 변화를 주게 되었다.

남들보다 일찍 회사 생활을 하면서 사회 생활에 대해서 일찍 눈을 뜨게 되었다.

친구들은 수업 듣기 바쁘고 술 먹고 놀기 바빴는데 회사 생활을 하게 되면서 나는 바쁘게 다른 업체들을 만나고 제품을 개발하기 위해 하드웨어 스펙을 읽고 윈도우 프로그램을 만들기 바빴다. 그 전의 대학 생활은 사회 생활을 위한 준비 운동이었다면 회사 생활은 정말 실전이었다. 다른 업체를 만나서 어떻게 이야기하고 사람들을 대해야 하는지, 그리고 실제 기술은 어떻게 개발되는지를 보면서 내가 정말로 빠르게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지금도 생각해 보면 그때의 경험으로 말미암아 좀 더 빨리 철들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이제는 학생이 아니라 어른으로 행동해야 하는 시기였으니까.

소프트웨어의 가능성에 대해서 눈 뜨게 되었다.

사실 회사에 처음 합류할 때는 하드웨어 팀으로 합류했다. 왜냐하면 나는 전자과였으니까. 하지만 대부분의 개발진들이 전산과 출신이었고 학생이었지만 이들은 C/C++, 윈도우 프로그래밍, Unix등의 소프트웨어 개발에 대해서 상당한 실력을 가지고 있었다. 박사 과정의 학생이 논문을 들고 와서 알고리즘에 대해서 설명해 주면 이들은 소프트웨어로 구현을 하고 최적화를 거쳐서 시장성이 있는 상품을 개발하고 있었다. 하지만 프로그래밍에 대해서 거의 문외한이었던 나로서는 이런 주류 개발진에 끼일 수가 없었다.

대신 나는 하드웨어 팀의 팀장님과 둘이서 일을 했었는데 팀장님이 자유방임형이어서 내가 하는 일에 거의 간섭을 하지 않았고, 나는 나대로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몰라서 그냥 하드웨어와 반도체 칩의 스펙만 읽는 날들이 계속 되고 있었다. 회사를 위해서 뭔가를 하고 싶었는데 내가 가진 전자과의 지식으로는 도무지 뭔가를 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몇 달간의 이런 따분한 과정을 거치고 내가 내린 결론은 나도 소프트웨어 개발을 해야겠다는 것이었다. 우선 하드웨어는 우선 단시간에 어떤 결과를 보는 것이 너무 힘들었다. 제품에 들어가는 모든 하드웨어 스펙을 읽고 부품 선정을 한 다음에 부품 업체들을 접촉해서 샘플과 필요 장비를 구해야 되는데 이런 과정도 시간이 너무 걸리거니와 경험이 없던 나로서는 어떻게 해야 될지도 몰라서 많은 실수를 저질렀다. 그리고 실제 제품을 디자인했다고 하더라도 시제품이 나오기까지는 많은 디버깅과 수정 과정이 있는데 그런 과정을 거쳐보지 않은 나로서는 반 년을 회사에 있어도 별로 진척이 없는 것 같아 따분하기만 했던 것 같다.

그러다가 조금씩 소프트웨어 개발로 방향을 틀기 시작했다. C/C++언어를 개인적으로 공부하고 윈도우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서 조금씩 나에게도 소프트웨어 개발 일들이 오기 시작한 것이었다.
소프트웨어는 개발 주기가 하드웨어에 비해서 상당히 빠르다. 그리고 상대적으로 많은 장비가 필요하지 않았다. 하드웨어는 기본적으로 오실로스코프, 신호 분석기 등의 여러 값비싼 장비가 필요하고 디버깅을 위해서 많은 노력이 필요했지만 소프트웨어는 컴퓨터와 컴파일러만 있으면 개발 할 수 있었다. 이런 단순함이 소프트웨어에 더 빠지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

자립심을 기르게 되었다.

회사를 다니면서 그 당시 처음 받았던 월급이 120만원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많지도 않았지만 학생이었던 나에게는 적지도 않았던 돈이었다. 열심히 일해서 한 달 월급을 받으면 이것 저것 살 수 있는지라 멋진 오토바이도 사고 오디오도 사고 CD도 수집하면서 돈 쓰는 재미가 쏠쏠했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가 스스로 돈을 벌고 쓰면서 돈 관리를 하게 되었고 학비와 생활비 등에 대해서 내가 책임지게 되는 시작점이 되었다.

대학교 4학년 때 다시 시작한 공부

대학교 4학년이 되자 앞으로 진로에 대해서 많이 고민하기 시작했다. 회사를 다닌 지는 1년 반 정도가 되었지만 아직 회사 내에서 주류 멤버가 되기에는 내 실력이 너무 부족했고 그렇다고 학업 공부도 열심히 하지는 못했다. 무언가 하나라도 좋은 결실을 맺었어야 했는데 아무것도 그렇지 못해서 내 자신에 대한 실망이 더해졌었다.

뭔가 큰 결심을 했어야 했다. 회사를 다니면서 많은 경험과 실력을 쌓기는 했지만 앞으로 회사는 언제든지 다시 다닐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대학교는 졸업하면 다시는 오지 않는 시기가 될 것이었다. 앞으로 미국 유학을 생각하고 있는 나로서는 학점이 무척이나 중요한데 4학년 올라갈 당시 학점을 보면 거의 4.3 만점에 2.6 점도였다. 이 점수로는 유학은커녕 괜찮은 대기업도 가기 힘들 것 같았다.

회사에 휴직 신청을 하고 공부에만 온전히 집중하기 시작했다. 성적표를 보니 성적이 완전 극단이 많았다. A를 받은 과목도 몇 개 있는 반면에 C를 받은 과목이 제일 많았고 가끔 D를 받은 과목도 많았다. 만일 재수강을 해서 C와 D를 받은 과목을 A로 바꾼다면 전체 학점을 크게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4학년이었지만 1학년 과목이었던 영어 I, 미적분 I을 다시 듣기 시작했다. 이제는 마음가짐이 예전과는 완전 틀렸다. 예전에는 의무감에 수업을 들어가기 시작했지만 이제는 어떻게든 A학점을 받겠다고 각오하고 마음을 다잡고 수업을 듣기 시작했다.

4학년 1학기는 재수강만 했었다. 1학년 때 성적을 망쳐놓은 미적분 1, 영어 1, 그리고 2학년 1학기 때 망쳐놓은 회로이론, 그리고 D+를 받았던 전자회로II, 그리고 C를 받았던 제어시스템까지 완전 재수강으로 5과목을 들었다.

그리고 4학년 1학기는 정말 열심히 공부했다. 매일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예습 복습을 철저히 하고 밥 먹고 자는 시간을 제외하면 거의 대부분의 시간을 공부에 할애했다.

학기가 끝나고 다음과 같은 성적을 받았다.

그 학기 평점 3.55/4.3으로 4학년 1학기를 마쳤다. 공부했던 양에 비하면 성적이 생각보다 나오지 않아서 좀 아쉬웠지만 그래도 지금까지 대학 생활에서 얻은 학점 중에서는 제일 높은 학점이었다.

그 다음 학기는 여름 방학에도 집에 가지 않고 학교에 남아 있으면서 다음 학기에 듣게 될 모든 과목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다음 학기 강의 계획표를 뽑아서 관련 교과서를 모두 읽기 시작했다. 아침에 도서관에 가서 저녁까지 공부를 하고 여름 방학 그 시기를 모두 공부에 올인했다.

4학년 2학기가 되어 재수강은 2개를 하고 나머지는 모두 전공 과목을 듣게 되었다. 1학기에 했던 것처럼 새벽까지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다가 기숙사에 들어와 피곤해 절어 쓰려져 자는 생활을 반복했다. 여름방학 동안에 그 학기 과목을 모두 공부해 놓은 것이 큰 효과가 있었다. 아무래도 한 번 다 공부를 했으니 그 학기에 듣는 것은 훨씬 쉬웠고 좀 더 여유롭게 공부할 수 있었다. 카이스트 전자과의 악명 높은 전자과 실험이 있어 무척이나 바빴지만 다행히 학기를 잘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 학기가 끝나고 받은 성적은 다음과 같다.

그 학기 평균 평점은 4.05/4.3을 받아 성적 최우등 장학금도 받게 되었다 (당시 카이스트에서는 4.0을 넘으면 성적 최우등 장학금을 받았다) 정말 놀라웠다. 나도 이렇게까지 학점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학점을 들고 나중에 지도 교수님을 만나 뵈었는데 맨날 성적이 안 좋아서 타박을 하시던 교수님께서 이 성적을 보고 아주 놀란 표정으로 보셨던 기억이 난다.

단 한번 4.0을 넘은 학점이었지만 이 기억은 나에게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어주었다. 대학 와서 공부 때문에 그렇게 많이 힘들어했는데 그렇게 열심히 노력하니 이런 학점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1년 더 다니기로 결심했다. 재수강을 하느라 졸업 요건을 채우지도 못했고 유학 가기에 충분한 학점을 따지도 못했다. 1년만 조금 더 열심히 하면 좋은 학점으로 졸업할 수 있을 것 같았다.

‘1년만 더 고생하자. 그러면 나중에 웃는 얼굴로 졸업할 수 있을 것이다’

대학교 5학년 시절이 정말 힘들었다. 동아리도 회사도 그리고 친구 관계도 다 포기하고 무조건 공부에 매달렸다. 학교, 식당, 도서관, 기숙사 네 곳만 다니면서 인간관계의 폭도 무척이나 줄어들었고 혼자 있는 시간도 길어졌다. 새벽 2-3시까지 도서관에서 공부하다가 기숙사로 들어오면 무척이나 배도 고팠고 쉽게 잠도 오지 않았다. 너무 배가 고프면 가끔 치킨이나 피자를 시켜서 먹었는데 먹고 배가 부르면 쉽게 잠도 오지 않았다. 아침에 가까스로 일어나 수업에 뛰어가다 보면 아침을 굶기가 일쑤였다. 수업을 마치고 김밥 하나를 사가지고 기숙사에 가서 김밥을 먹으면서 숙제를 하고 예습을 하고 다시 수업에 들어갔다. 4시 혹은 5시 반까지 수업을 듣고 나서 학생식당에서 밥을 먹고 다시 도서관으로 갔다. 그곳에서 새벽 2~3시까지 공부하다가 다시 기숙사로 온다. 이런 생활을 1년 동안 반복했다.

드디어 졸업을 했다. 학점 3.52/4.3까지가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그래도 거의 평점을 0.9를 올렸다. 졸업하기까지 재수강 수업을 다시 세어보니 19개 정도가 나왔다. 한 학기에 수업을 5-6개 듣는 것을 고려해보면 3학기 정도를 그냥 재수강만 했다는 것이다.

카이스트의 성적표를 다시 보고 있으면 그때 얼마나 고생하고 힘들었는지 생각이 다시 난다. 1학년 때 성적을 보면 그 당시 수업을 많이 듣지 않은 것을 볼 수 있다. 예전에는 재수강을 한 수업들에 R이라고 적혀 있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재수강한 과목들은 성적표에서 사라져서 그렇게 된 것이다. 자랑할 만한 성적표도 아니지만 그때 한 노력 때문에 이렇게 미국에 유학을 올 수 있게 된 것이 아닌가 생각한다. 지금도 그때 생각을 하면 가슴이 뭉클하다.

대학생활에 대한 조언

내가 다시 카이스트 1학년으로 돌아간다면 내 인생을 어떻게 새롭게 살 수 있을까? 대학 시절은 분명 후회가 많고 아픔이 많은 시절이었다. 내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 그 뼈를 깎는 과정을 내가 선택했지만 내가 좀 더 일찍 깨달았더라면 최소한의 고통으로 그 시기를 끝낼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만일 미국에서 소프트웨어를 꿈꾸는 후배들이 있다면 내가 대학 생활에 대해서 줄 수 있는 조언은 다음과 같다.

학점에는 철저하라.

학점이 인생의 전부도 아니지만 학점이 좋지 않다면 미래의 인생을 설계하는데 있어 걸림돌이 되는 경우가 한두번은 반드시 생긴다. 앞에서 언급한 나의 대학 생활 얘기만 보더라도 1~2학년을 놀다 보니 본격적으로 전공에 깊이 진입하게 되는 3학년 때는 전공 공부를 따라갈 수가 없게 되고 4학년 때는 어떻게 할 수 조차 없게 되었다. 다행히 굳게 마음을 먹고 1년을 더 다닌다는 각오로 19개의 재수강을 해가면서 학점을 3.52까지 올리기는 했지만 2년동안 정말 지옥과도 같은 삶이었다.

미국에서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로 일하고 싶고 그 목표를 위해서 미국 유학을 가고 싶다면 정말 1학년부터 공부를 열심히 해서 학점을 만들어 놓기 바란다. 카이스트에서도 그렇게 한 친구들 중 몇몇은 MIT나 스탠포드와 같은 탑 랭킹의 대학원에 진학했다.

중요한 것은 학점의 중요성을 얼마나 빨리 깨닫는가이다.

영어 공부를 철저히 하라.

미국으로 가서 미국 사람들과 일할 생각을 하고 있다면 영어가 얼마나 중요한지는 언급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본인도 완전 토종 한국 사람이고 학교에서 영어를 배운 것 이외에는 영어를 따로 배울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대학교에서 영어를 잘하는 것은 아니었다. 그래서 더욱 외국에서 공부하다가 카이스트에 진학한 친구들이 부러웠다.

하지만 이런 나에게 부족한 영어를 보충하기 위해서 여러 기회들을 붙잡았다. 카이스트에서는 매년 여름마다 5주정도 영어마을이라고 하는 영어 캠프가 있었는데 그 캠프에 참여해서 반에서 반장도 하고 연극도 하고 연설도 하면서 적극적으로 영어를 말하는 것을 익혔다. 그 전까지는 영어 말하기에 별로 자신감이 없었는데 5주 동안 거의 영어만 쓰면서 살다 보니 영어 듣기와 말하기가 급격하게 향상된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전공 원서를 무조건 많이 읽었다. 어차피 미국 가서 공부를 할 생각이었고 앞으로 미국에 가면 원서를 질리도록 읽을 것이라는 생각에 원서를 반복해서 많이 읽으면서 아카데믹 영어에 익숙해지고 읽기 속도가 늘도록 많이 노력했다. 어떤 친구들은 영어가 힘들어서 한글 번역본을 사다보기도 하고 다른 한글책을 가지고 공부하기도 했지만 이 방법을 권유하지는 않는다.

가능하면 원서를 반복해서 공부하고 모르는 부분들은 교수님이나 다른 친구들에게 물어서 그 의미를 찾기 바란다. 원서와 익숙해져야지 나중에 미국에 가서도 공부할 수 있고 미국 회사에서 일할 때 큰 장애물 없이 일할 수 있다.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가 있으면 꼭 나가라.

서울대에 편입을 한 후 가장 먼저 한 일 중의 하나는 해외에 나갈 수 있는 기회를 찾아보는 것이었다. 첫 봄학기를 시작하는 동안 여름 학기에 미국 대학에 가서 공부할 방법을 찾다가 University of California at Berkeley에서 여름 학기를 듣게 되었고 교환 학생을 갈 기회를 찾다가 서울대 경영대 내에서 자체 학생 교류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고 그곳에 지원을 해서 독일의 European Business School (EBS)라는 유명한 사립 경영 대학에 교환 학생으로 한 학기동안 다녀오게 되었다. 서울대에 편입한 2006년의 여름부터는 미국, 독일, 그리고 여러 유럽 도시들에 있다 보니 자연히 반 년 정도는 영어만 쓰게 되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심심해서 토익을 봐보니 점수가 950점 정도가 나왔다 (예전에 카이스트 재학 시절 봤을 때는 700점을 넘지 못했다). 언어를 그냥 공부하는 것과 실제로 쓰면서 삶이 되어 버린 경우가 얼마나 다른지 체감해 본 기회였다.

또한 해외에 가서 방문 학생이나 교환 학생을 경험해 보는 것은 나중에 미국에 취업 하기 위해서 거의 절대적으로 필요한 미국 유학 생활을 간접적으로 체험해 보는 기회가 된다. 언어가 잘 통하지 않는 외국에서는 어떻게 살아야 되고 다른 나라 친구들을 어떻게 사귀고 그리고 만일 혼자 모든 것을 해결해야 되더라도 여러 어려움을 경험해 가면서 깡이 생기게 된다.

복수 전공을 하면 진로 선택폭이 넓어진다.

내 인생에 있어서 가장 잘한 선택 중의 하나는 여러 전공을 한 것이다. 지금 델에서 일하는 시점에는 공식적으로 나의 전공은 3개이다. 카이스트에서 전자, 서울대에서 경영, 그리고 예일에서는 전산을 전공했다. 공부를 좋아하고 다른 학문들도 공부해 보고 싶었던 탓에 한국에서는 온라인 대학에서 1학기지만 법학을 공부해 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에서는 근처의 Austin Community College에서 English 전공으로 공부하고 있고 University of Texas at Austin에서 Software Engineering을 공부하고 있는 전자과 석사생이기도 하다.

이런 다양한 전공을 가져서 좋았던 것은 셀 수도 없이 많다. 우선 첫째로 델에서 직장을 얻기가 쉬웠다. 델에서 처음 일했던 바이오스 분야에서는 컴퓨터의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의 연관 관계를 잘 이해하고 소프트웨어를 잘 만드는 것을 요구하였는데 전자과 전산을 같이 전공한 나 같은 사람이 최적의 지원자가 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경영을 공부했던 경험으로 말미암아 이공계 이외의 다른 인문계 학문을 이해하게 되었고 직장을 찾을 수 있는 폭이 상당히 넓어지게 되었다.

카이스트에서 전자과를 졸업했다면 많은 경우 삼성이나 LG아니면 다른 대기업이나 벤처 기업에 엔지니어로 가게 되는데 서울대에서 경영을 공부하고 나니 할 수 있는 것이 상당히 많아졌다. 우선 회계를 공부해서 회계사도 될 수 있었고, 컨설팅사에 지원해서 전략 컨설턴트도 될 수 있었다. 그리고 투자 은행에 지원해서 트레이더 혹은 M&A 전문가로 성장할 가능성도 열려 있었다. 즉 다른 전공을 지원하게 되면 미래의 가능성에 좀 더 다양하게 펼쳐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남자라면 가능하면 군대를 해결하고 해외에 나가기 바란다.

군대에 가기 전에 미국에 유학을 온 경우에 군대 때문에 많은 고민을 하는 경우를 본 적이 많다. 병무청에서 정한 병역의 최대 연기 시한까지 학업을 끝내야 하는 압박이 있거니와 만일 정해진 시간 안에 학위를 취득하더라도 미국에서 경력을 쌓아야 되는 시점에 한국에 다시 들어가 병역의 의무를 이행해야 되는 경우가 생긴다.

미국에서 석사 혹은 박사를 마치면 OPT를 받고 공대의 경우 27개월까지 미국에서 취업 비자 없이 일할 자격이 생긴다. 하지만 한국에 다시 들어간다면 OPT의 기회도 없어지고 경력에 공백이 생겨 미국에서 다시 일할 기회도 줄어들게 된다.

미국에 와서 공부할 생각을 가지고 있다면 반드시 군대를 해결하고 미국에 오기 바란다. 사람의 인생이라는 것은 많은 변수를 동반한다. 아무리 철저한 계획을 세우고 미국에 왔어도 여러 일이 생기고 계획이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경우가 생긴다. 이 때 군대가 인생에 걸려 있다면 자신의 목표를 다 이루지도 못하고 한국에 돌아가야 되는 경우가 생긴다. 그래서 가능하면 이 군대 문제는 꼭 해결하고 미국에 오는 것이 미래를 위한 더 현명한 선택이 될 것이다.


Share this post on:

Previous Post
영어: Study vs Learn
Next Post
미국 취업기 (4) – Dell에서의 4년